사연과신청곡
소년, 소녀를 만나다.
icon 김태호
icon 2009-04-29 16:37:17  |   icon 조회: 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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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으로  YBS 게시판에 사연을 남겨봅니다. 저는 현재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스물두살, 06학번의 한 남학생입니다. 등교길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한 오후에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백양로와 신촌 캠퍼스를 훈훈하고 아름다운 소식으로 감싸주시는 YBS 의 방송을 듣기만 하다가 막상 이렇게 제 얘기를 남기려니 살짝 긴장도 되고 무슨 얘길 할까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아마 제 얘기가 사연에 채택된다면 지금보다 백배는 더한 긴장과 약간의 뿌듯함도 느끼게 되겠죠.
4월의 따스한 봄바람이 캠퍼스를 감도는 아름다운 봄 입니다. 이 봄을 연세 교정에서 맞이한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네요. 교육학과를 이중전공하느라 항상 상대본관과 용재관을 넘나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입니다. 1, 2학년 땐 하루에 몇번씩 왕복해도 지치지 않던 체력이 이젠 한 번만 왔다갔다하면 온 몸에 진이 빠져버리니, 사람이 이래서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한다고 하나봐요...^^ 아직 스물둘 밖에 안된 제가 이런 말을 하니 뭔가 심히 어색하긴하네요...ㅋㅋㅋ
용재관에서 상대본관을 가는 길은 숨이 가쁘지만 반대로 상대본관에서 용재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훨씬 더 가볍습니다. 단지 그 길이 내리막길이기 때문만은 아니예요. 그 길, 청송대를 따라 노천극장을 지나 철쭉과 개나리, 진달래가 핀 용재관으로 향하는 그 내리막길엔 봄이 되면 언제나 제 기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설레임이 묻어 있기 때문이죠. 이미 많은 분들이 쓰셨을법한, 그리고 신청하셨을만한 사연이지만 저는 봄이 되면 철모르던 1학년 시절, 제 마음을 봄비만큼이나 촉촉히 적셔주었던 짝사랑 친구와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답니다.
처음 동아리에서 알게 된 그 친구는 정말로 '봄과 어울리는 친구'였습니다. 그녀는 뽀얀 피부와 큰 것같으면서도 작은, 적당히 아담한 체구를 가진, 그리고 봉사와 섬김의 마음이 충만했던 교과대 1학년 생이었습니다. 그런 그 친구에 비해 제 모습은 부끄러울만큼 형편없었죠. 작은 키에 비해 많이 나갔던 몸무게, 아무것도 모르던 어리버리 1학년생, 제 모습을 회상했을 때의 떠오르는 게 그게 전부네요. 고등학교때까지 죽자고 공부만 했던 탓에 남녀공학에 남녀합반을 나왔으면서도 이성에는 눈꼽만큼도 관심도 없고, 여자를 잘 알지도 못했던 저는 처음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친구를 만나고 결국 사랑의 열병에 빠져버리고 말았지요.
동아리에서 몇 번 마주할 기회는 있었지만 도통 서로의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내어 그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마음에 저는 용재관 앞을 참 많이 갔었어요. 용재관 입구에서서성이면서 차 한잔 하자는 문자를 보내기 위해 몇 번이고 핸드폰 문자판을 눌렀다 지웠다한 탓에 문자판은 두달도 안되어 다 닳아버렸지요. 어떤 때는 그 친구와 밥 한끼 같이 먹기 위해 과감히 수업 하나 쯤은 빠지던 용기있는(?)제 모습도 기억나네요. 그래도 교양 수업이었으니 망정이지 전공 수업에서 그랬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하네요...그래도 어찌어찌해서 마음씨 착했던 그 친구는 저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서로의 비전과 연애관, 그리고 대학 생활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 까지 말이죠. 짝사랑이라는 게, 하는 그 순간에는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심적으로 힘든거라는 거, 대부분의 학우들은 아실거예요. 저 역시 이 두 감정이 언제나 복합되어 그 친구를 떠올리곤 했거든요. 용재관 앞에서 만나 활짝 핀 개나리와 진달래꽃을 감상하며 봄의 아름다움을 얘기할때면 더없이 행복하다가도, 청송대에서의 잠깐의 산책을 마치고 저는 상대본관으로 그 친구는 용재관으로 돌아가야 할때면 늘 아쉬움과 머뭇거림이 남았습니다. 상대본관에서 용재관까지는 제 걸음으론 5~7분이 걸리는데요, 그 친구를 만날 때면 3분도 안돼서 가게 되더라구요. 바로 그, 청송대와 노천극장 옆을 지나 꽃이 활짝 핀 용재관 입구, 그 내리막길로 말이죠.
그렇게 아름다웠던, 하지만 아쉬웠던 1학년 1학기를 보내고 여름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대학에서 맞이하는 첫 방학, 저는 정말 알차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정말 그 친구에게 더 나은 모습으로 짜잔하고 나타나기 위하여 엄청난 계획들을 세우고 시작했죠. 이름하여 '자기계발 프로젝트 시즌 러브' 라고 말이예요. 미니홈피에 커다랗게 제목을 써놓고 저는 제가 해야 할 목록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가 궁금하시다구요? 80kg 이었던 몸무게는 헬스장을 다니며 식이조절을 눈물나도록 한끝에 65kg 으로 바뀌었고, 대학가면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도 몇 곡 마스터 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들려주면 좋을만한 곡들로 말이죠. 뿔테 안경대신 렌즈를 사고, 쾌쾌했던 옷들을 벗어던지고 좀 더 맵시 있는 트렌피 코트와 구두를 사고, 저는 그렇게 그 친구와 재회할 가을학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2학기가 시작하고, 드디어 다시 동아리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어요. 많은 분들은 저에게 왜 이렇게 멋있어졌냐고 찬사를 보내주시더군요. 기분은 좋았지만 정작 저의 이런 변한 모습을 봐줄 그 친구는  개강한뒤에도 오래토록 만날 수 없었습니다. 또다시 용기내어 연락을 했습니다. 오랫만에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말이죠.
언제나 그랬듯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저를 맞이해준 그 친구를 보며 저는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어떻게 지냈니?' 로 시작한 통화는 30분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31분에 저는 그 친구로부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죠.' 나 의대다니는 남자친구가 생겼어. 정말 멋진 아이야.' 그 마지막 31분째 통화에 제가 느꼈던 슬픔과 아쉬움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학기와 여름방학, 그리고 30분째 통화까지...도합 7개월하고도 30분에 걸친 그 친구를 위한 제 마음들이 더이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짧게나마 '축하해' 라는 말만 남긴채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았지요.
골키퍼 있는데 골 안들어가란 법있냐는 둥 그런 식의 사랑은 이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연히 그 사람의 인연이 존재하는 법일텐데 그런 식으로까지 제 욕심을 관철시키고 싶진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지만 저는 결국 그 친구를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을 묻어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좋아한단말, 한마디 못한채 끝나버린 저의 첫사랑이 봄이 오면 떠오르곤 하네요. 언젠가 우연히 중앙도서관에서 누군가를 스쳐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잘은 몰랐지만, 자세히 보지도 못했지만, 그냥 왠지 그 친구일거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만이 갖고 있는 벚꽃향기, 진달래 느낌, 바로 봄의 분위기가 느껴졌거든요.
과연 제 사연이 채택되어 스피커를 타고 캠퍼스에 퍼질때, 그 친구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요?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저에겐 또다시 봄이 찾아올테니까요.
지금도 용재관 앞을 나서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봄햇살을 듬뿍 머금은 진달래꽃 마냥 제 얼굴이 분홍빛으로 달아오르곤합니다^^*
오늘도 용재관 수업이 있어 상대에서 용재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겨우겨우 10분을 채워서 강의실에 도착했습니다. 조만간, 저의 발걸음을 설레게 해 줄 또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되겠죠?

신청곡으로는 '이소은' 의 <소녀, 소년을 만나다.> 를 띄워주세요.
저는 비록 소년이었지만 왠지 이 노랠 들으면 그 때의 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 같거든요^^
부족한 제 사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04-29 16: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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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S 2009-05-25 16:37:27
사연이 채택되셨으니 저희 본 방송국 종합관 610호로 오셔서 영화관람권을 받아가세요^^

(오시기 전에 010-7270-5516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